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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너머로 기울어가는 햇빛이 점점 진한 주황색으로 부풀어오르는 것도 잠시, 팡!하고 큰 소리를 내자마자 자취를 감추는 화약처럼 그 많은 빛의 산란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짙어져간다. 시간이 흐른다. 모두가 변한다. 용을 써도 변하지 않을 세계의 이치다. 따지고보면 그 덕에 지금의 우리가 이리 서로의 품에 자리하고 있는것이지. 그 말은 곧 앞으로 계속 너도 변하고 나도 변할 거란 이야기라, 결국 나는 이어지는 상상속에서 우리의 끝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만다. 마음의 변질이든, 물리적인 거리 때문이든 어떤 형태로든지.
너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믿으니까. 귓가에 당신이 내게 건네준 잊지 못할 이야기들이 감돌았다. 네가 날 사랑한다는 수많은 증거 중의 하나가 된다. 물론 부득부득 증거를 대지 않아도 네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에는 한 치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우리에게도 분명 마음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자리잡고 있음을 안다. 이를테면 길게 남지 않았을 ...
언젠가 이 품을 느끼지 못할 때를 굳이 떠올리며. 나는 문득 그 지점이 너무 두려워져 당신을 세게 껴안았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네가 건넸던 말들과는 전혀 상관 없는 문장을 내뱉는다. 시간이 멈추면 너도 나도 이 마음도 거리도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른 말로 하자면 순간인 이상 나도 너도 결국 영원할 수 없다는 소리인 것 같아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쓸쓸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마음을 이제사 아끼기 시작하겠다던가, 의미없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애초에 네가 아니면 있을 필요조차도 없을 사랑이다. 맞아. 널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버티고 서 있는 두 다리도, 널 끌어안고있는 두 팔도, 에스더 카터로 마주한 이후 한 번도 게으르게 뛰었던 적이 없을 심장도, 보랏빛 눈동자와 그 자리를 적시고 있을 눈물까지도.
키스해줘.. 나는 너무 무서워서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하기로 한다. 무서운 일이 생길 때면 알게 모르게 항상 너에게 요구하는, 안아줘, 키스해줘, ...사랑해줘. ...와 같은 것들. 그럼 너는 꼭 그 어리광을 받아주고는 이 모든 부정적인 상상을 걷어낸다.
당신의 손짓 하나로, 행동 하나로 많은 것들이 상관없어질 때가 있다. 나는 한 편의 소설같은 그 장면을 너무너무 좋아해. 그러니까 나는, 나야말로 죽고 싶어도 죽고싶지 않을만큼 너와 함께이고 싶은거야. 이런 두려움마저도 제 본질을 잃을 정도의 황홀함을 곁에 두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