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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카터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에 썩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르침을 받는 상대가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처음 만났을 때는 본론보다 일상적인 주제를 이끌어 긴장된 공기를 푼다던지, 상대의 부족한 점은 에둘러 지칭해 엄격한 분위기를 지양한다던지. 그러니까… 사실은 가르침 이전에 남을 대하는 것에 서툴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가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타입이라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에스테반을 '가르치는 일' 하나는 거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애초에 맡은 일은 최대한 해내는 사람이니. 특히 정이 섞인 일이라면.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그는 칼을 한 번 휘두르는 일이 없었다. 정해진 약속 장소에서 에스테반을 만나고, 쥐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검집에 도로 꽂아 넣은 것이 전부다. 독단적이고 사전에 설명하지 않은 행동의 원인을 일러주지도 않았다. 그는 항상 불친절하다. 빈말로라도 상냥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 …나는 양손잡이라 괜찮아요. "
한쪽 팔에 붕대를 감고 모습을 드러낸 에스테반이 항상 들던 검을 가지고 건넨 말은 고작 그 뿐이었다. 에스테반의 말을 듣고 당장 들었던 생각은…
' 장난인가. '
였다.
에스테반은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나와는 정 반대로, 그는 시간을 절대로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대로 하루를 지내고 정해진 시간에 잠들겠지. 그와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라고 해봤자 일이주에 한 번이 끝임에도 항상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어련히 그런 짐작을 하게 했다. 그래도 이따금씩 자신과 쓰는 시간에 여유를 두는 모습을 보자면 몇 가지 추측이 더해졌다. 예를 들면 뭐, 생각보다 시간을 빡빡하게 쓰는 건 아니라던지, 학구열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라던지, …생각보다 날 싫어하지는 않는다던지.
어쨌든 딱 보기에도 팔 한 쪽을 쓰기 어려운 상황인데 굳이 약속한 장소에 나와 있는 걸 보면 여전히 에스테반은 성실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전쟁 이후 처음 만났을 때도. 쉬어도 좋을텐데. 열심히 사는 당신에게는 미안하고 무례한 생각이지만 저가 보기엔 시간을 너무 미련하게 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열심히라고 해야할 지, 그보다는 부나방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도 맹목적으로 만들었을까. 말없이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뒤 눈을 감는다. 오늘은 검을 뽑아들지 않을 예정이다.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하게 약속을 깬 사람이고 좋게 말하면… 휴식이다. 너를 위한.
너를 위해? 아니, 그런 게 아니지. 계속 반복되어 온 검술 연습을 빼먹은 적 없는 나를 위한 일이지. 그리고… 아까부터 거슬리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 선을 긋는다. 상대를 위해서라니 정말 나하고는 맞지도 않는 일이었으므로.
어쩌면 에스테반에게는 오지랖일테고. 에스더 카터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제가 가르치는 일에는 재능이 없고 그 과정에서 에스테반과 특별한 감정을 쌓은 적이 없다 해도 전장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일러준 사람이 다쳐왔다는 이야기는 결코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하물며 제 3자의 일이었더라도 유쾌할 수가 없는데,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라니 !
혹시 너무 성의 없이 가르친 건 아닌지, 아니면 애초에 당신과 맞지 않는 방법으로 가르치려고 든 건 아닌지, 내 역량의 부족은 아닌지. 눈을 감는다는 것은 많은 상념을 끌어오는 행위다. 이 많은 생각의 끝은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귀결된다. 역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에는 재능이 심각하게 없는 모양이다. 분명 알고 있던 일인데 괜히 마음 한 쪽이 시큰거린다. 외면해왔던 현실에 대한 직시. 사실은 이쯤에서 손을 떼는 게 맞을지도 몰라. 세상에 나보다 검을 잘 쓰는 사람은 많고 그 사람들은 당신을 더 잘, 능숙하게 가르쳐 주겠지.
에스테반이 슬쩍 제 눈치를 보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검을 만지작대는 손이 갈 곳을 잃은 모습이다. …이 참에 네게 말할까. 나는 널 가르칠만한 재목이 안 된다고. …나는.
" 시간이 다 되었군요. "
다음 주에 뵙지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너와 내 사이로 유난히 시린 바람이 한 겹 부는 것만 같다. 나중에 말하자. 타이밍 탓을 하며 내비칠 준비가 되어있던 아주 작은 진심을 다시 마음속으로 욱여넣는다. 사실 지금 말했어도 됐지 않아? 끊임없이 드는 생각을 미루고서야 나는 자리를 뜬다. 아 그래. 내가 누굴 가르칠만한 사람이 아닌데도 굳이 너를 붙잡고, 네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 이유는…,
나는 너와 보내는 이 시간에 … 생각 이상으로 의미를 두고 있는지도 몰라.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에스더 카터는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