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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유튜브 들어가셔서 연속재생으로 들어주세요 헤헤 중간에 끊길것같아서)
씬/80, N, 첫날 전투 종료, 히어로 건물, 방-S
무표정한 에스더 카터가 방 안에 덩그러니 서 있다.
-인서트,
15부 34씬, 에스테반이 사망하는 장면.
-현재,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더 앞에 등장하는 에스테반 아스트리드.
에스테반 미안해.
에스더 (뜸을 들이며) 누구세요.
에스테반 거짓말쟁이요.
*** (중략)
서서히 동이 트고 날이 밝아온다. 에스테반의 형체가 흩어지기 시작하고.
에스테반 그랬다면, 기다릴까, 우리, 서로.
에스테반의 손이 에스더의 얼굴을 향하고 두 사람이 닿은 것 같다. 에스더가 눈을 감고 운다 두 사람, 이어 키스.
-인서트, 11부 15씬, 17씬, (중략) …13부 28씬
연달아 지나가는 둘의 만남. 과거의 모습과 현재가 겹치고.
-현재, 건물 사이로 해가 뜬다. 자리에 홀로 남은 에스더. 에스테반은 온데간데없다.
시간 경과 후 눈을 느리게 뜨며 허공을 응시하는 에스더.
에스더 (슬픈 표정이나 최대한 목소리 덤덤하게) 에스테반…….
씬/81, N, 첫날 전투 종료, 어두운 공간-S
-씬 80, 울고 있는 에스더. 손을 뻗는 에스테반, 일순간 시야가 어두워진다.
-현재, 나레이션.
에스테반(소리)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담아낸 것은…
*** (후략)
에스더 카터는 오로지 촬영 현장에 몰입하고 있었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씬의 주역은 자신이 아님을 증명하듯 스태프들과 똑같은 담요를 덮고서.
그가 촬영할 분량은 끝났다. 이후 나레이션의 녹음이 있겠지만 그건 적어도 몇 달 후의 일이다. 어느 정도 편집이 끝나면 감독에게서 연락이 오겠지. 그렇다면 왜 그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나? 드라마의 마지막 씬이었다. 다들 피곤할 법도 한데 에스더를 포함해서 평소보다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16부작 드라마의 마지막 촬영을 위해 모였다. 에스더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에 있는 많은 사람의 눈길 끝에는 에스테반이 있었다.
스튜디오 한가운데에서 저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연기하는 에스테반이 그렇게 달달 외웠을 대본의 끝자락을 뱉어간다. 한 씬이 꽤 긴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는 실수 하나 없다. 감정이 고조되고, 에스더는 숨을 느리게 들이켰다.
그리고 속으로 3. 2. 1. 숫자를 세면
" 컷! "
딱 맞춰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진다. 그제서야 촬영 현장(이었던 곳)의 공기가 풀어진다. 여기저기서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인사가 터져 나온다. 어떤 스태프와 배우들은 손뼉을 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눈물을 찍어냈다. 다들 그간의 고생이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깔끔하게 끝마친 마지막 씬.
무섭도록 집중하고 있던 에스더의 표정이 풀어지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웃으면서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나눈다. 인사하고 발을 옮기고, 악수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고. 몇 번의 반복 끝에 그가 겨우 멈춰섰다. 에스테반의 앞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에스더와 눈을 마주친 조명 감독이 에스테반 주변의 조명 장비들을 걷어내며 인사한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 수고하셨어요. 에스더가 정중하게 인사하지만 그의 신경은 오로지 에스테반에게 쏠려있다.
막 촬영을 끝낸 에스테반을 여러 명의 스태프가 둘러싸고 있었다. 정리를 도와주며 말을 건네는 모습. 일에도 순서가 있는 법인데. 스태프들을 상대하기도 바빠 보이는 그에게 억지로 자신을 의식시킬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 순간 가장 피곤한 사람은 에스테반이겠지.
자신의 스태프용 담요를 걷어내고 그에게 덮어줄 심산이었으나, 차마 말을 걸지는 못하는 모습이 꼭 사모하는 이를 앞에 두고 러브레터를 건네기 망설이는 사춘기 중학생 같다. 결국에는 기웃거리기만 하던 에스더를 발견한 에스테반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에스더, 거기서 뭐 해? 응, 아니 수고했어. 마침내 에스더가 들고 있던 담요를 에스테반에게 덮어준다. 누가 보면 좀 의심스러울까, 망설이다가 짧게 포옹하고 떨어졌다.
" 수고하셨어요. "
" 수고하셨습니다~ "
" 네에, 다들 일 많으셨어요. "
어느 작품이나 똑같지만 촬영 막바지가 제일 힘들다. 체력도 정신력도 작품의 끝과 함께 달려가는 시기. 물론 이번 작품도 당연히 그렇겠지, 싶었지만 이건 역시 상상 이상으로 좀. 그 때문인지 에스더는 일 많으셨어요. 하고 말을 덧붙인다.
서로 인사를 실컷 나누던 사람들이 진정하기 시작하자 촬영 현장이 조금씩 정리됐다. 에스더가 주위 스태프들에게 짧게 도와줄 일 있어요? 하고 말을 건네면서 받아온 간단한 심부름을 몇 가지. 어차피 제가 할 일은 몇 없었다. 카메라, 마이크, 조명, 촬영 세트… 함부로 손을 대면 큰일 날 장비들을 피해 주위를 휘이, 한번 둘러보는 척하다 몰래 에스테반의 손을 잡아 제 주머니에 넣… 어라.
" …에스더? "
" 아, 이거 촬영용으로… 주머니 못 쓰게 만들었지 참. "
갈아입는 걸 깜빡했네. 검은 목 티와 황갈색 코트는 옷의 주인이 몸을 꽤 험하게 쓰는 사람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전문 스태프들의 손이 닿은 황갈색 코트. 가장 인위적인 소품은 현장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소품이 된다. 꼴을 보면 방금 막 전장을 겪고 왔다고 해도 대뜸 믿어버릴 정도의 정교함. 섬세함. 그런 소품에 주머니가 하나 없다는 게 무슨? 에스테반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촬영하다 에스더의 실수로 주머니의 박음질을 찢어먹은 이후 (대체 어떻게 했길래 주머니가 찢어졌어요? 스태프들이 황당해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급한 대로 코트 주머니를 막아뒀던 걸 잊은 모양이었다.
괜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슬쩍 손을 놓자 이번에는 에스테반이 다시 에스더의 손을 쥔다. 둘이 마주 보고 웃는다. 서사의 주역이었던 자들을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16부 81씬. 또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되게 길었지. 에스더가 말을 건네자 에스테반이 동의한다. 응. 그렇네.
촬영이 끝나고 에스더는 며칠 새 내리 잠만 잤다. 자다 일어나서 음식을 좀 챙겨 먹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다시 잠이 몰려와 꾸벅꾸벅 존다. 보다 못한 에스테반이 들어가서 자라고 한마디 하면 뽀뽀해주면 들어갈게, 와 같은 되도 않는 어리광을 부리다 결국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그럼 또 금세 잠에 빠져서는 몇 시간을 자다가 일어나고… 의 반복이었다.
에스더 카터는 잠이 많은 사람이다. 몇 개월 동안 잠을 줄여가며 촬영하는 것 자체가 실로 힘든 유형. 선천적으로 잠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나. 따라서 작품이 끝난 직후, 매번 며칠 간의 행동들은 일종의 의례였다. 그래서 며칠 걸려 현장 정리를 끝낸 스탭진들의 회식 권유 연락도 못 받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그와 합을 몇 번 맞춰본 스탭들이나 감독들은 이제 에스더의 패턴에 익숙해졌다. 못 나와? 아~ 그 친구? 걘 원래 그래. 뭐, 잠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는 원체 사람들과 능숙하게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기도 했고.
분명 이번 작품 뒤풀이도 그럴까 싶었는데 웬일로 연락을 받은 에스더가(예의상 전화를 건 스탭이 살짝 놀랐다.) 회식에 나오기까지 했다. (대다수가 꽤 놀랐다.) 에스테반도 같이. 저나 (특히) 제 연인이나 술이 강한 편이 아닌 까닭에 술자리를 오래토록 지키지는 않았으나 평소보다는 길었다. 한창 들뜬 사람들이 좀 더 있다 가지 그래? 하는 말에 그럴까요? 하고 순순히 붙잡혀 주기도 했다. 이상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시끄럽게 떠드는데도 오늘따라 거슬리지 않았다. 여느 회식들과 다른 바 없는 분위기인데. 대개 촬영하는 동안의 해프닝이라던가 농담 따먹기를 주고받으며 술을 같이하는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뭐 예를 들자면…
" 그러고 보니 둘은 가까운가 봐? "
" 네? "
…이런 것들?
에스더와 나잇대가 비슷한 조연출이 대뜸 에스테반과 에스더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얼굴이 약간 달아오른 모양새가 아무래도 꽤 술을 들이켠 거겠지.
" 왜~ 그냥, 오늘도 둘이 나타나고. "
" 어…… "
그럼요. 가깝죠.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되는 말에 에스더가 잠깐 뜸을 들였다. 술이 좀 들어갔나. 별로 안 마셨는데. 에스더가 뒤늦게 변명하는 상황으로 비치기 전에 에스테반이 타이밍을 잡아채고 입을 열었다.
" 나이도 비슷하고 이것저것 많이 나왔잖아요. 저번에도 조연으로 같이 나왔는데. 그때도 조연출 맡아주지 않으셨어요? "
" 아, 아 맞다. 그랬지. 그러고 보니 그때도 그런 일 있었는데, 다들 알아? 말했나? 왜 촬영하면서… "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넘어간다. 에스더는 조연출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면서 내심 안도를 했다. 물 마셔. 에스테반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슬쩍 눈치를 준다. 충분히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이리저리 서로의 잔과 컵이 섞여버리는 바람에 제 컵을 찾지 못한 에스더가 한숨을 쉬었다. 에스테반이 마시던 물컵을 내민다. 고마워. 눈웃음으로 고마움을 대신하고 물을 들이켰다. 손목에 찬 시계를 슬쩍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 정말 일어날까? 둘이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두 사람 다 자기 주량에 맞춰 술을 조절하는 덕에 집 안이면 모를까, 밖에서 취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은 없었더랬다. 술이 조금 들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정신은 말짱한 모양이었다. 제대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매번 눕던 그 침대에 군말 없이 들어가는 걸 보면. 불 끈다. 에스테반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야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평상시라면 불을 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잠들었을 만큼의 시간. 도저히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눈을 감다 못한 에스더가 몸을 반쯤 에스테반 쪽으로 돌려서는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혹시 제 애인이 잠에서 깰까 걱정하면서.
" …잠이 안 와? "
깨웠어? 미안…. 사과하는 에스더를 보고 에스테반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도 잠이 안 와서. 에스테반도 에스더를 조심스레 껴안았다. 둘의 거리가 그 어느 누구보다 가까워진다. 언뜻 심장박동이 오른쪽 가슴에서 느껴진다. 사람의 온기가 확연하게 느껴져서 곧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습관처럼 에스테반의 머리를 만지작대다가 에스더가 맥락 없이 입을 열었다.
" 촬영하는데… 우리 마지막 날 있잖아. 그 80번째 씬. "
" …응. "
약간 잠긴 목소리로 에스테반이 답했다. 잠들기 직전의 연인을 방해했다는 느낌이 들어 문득 미안해졌다. 그렇지만 지금이 아니면 말을 못 할 것 같았다.
" 그거 좀 힘들었는데. 그래서 NG 날 뻔했어. 자꾸 울어서. "
" 실제로도 났잖아. "
그렇게 말하고 에스테반이 작게 웃음을 흘린다. 에스더도 같이 웃는다. 씬80은 씬 자체가 긴 편인 데다가 감정을 억누른다던가, 반대로 누르면서 표출한다던가, 까다로운 부분이 꽤 있어서 촬영 중 유독 NG가 많이 났다. 에스테반만큼 깔끔하지는 못해도 필름을 그렇게까지 낭비하는 사람은 아닌데. 저 때문에 몇 번이고 슬레이트가 딱, 소리를 내며 맞물렸으며 같은 대사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가? 돌연 부끄럽다.
" 그치만… 우리 이름 그대로 써서 그런가. "
가만히 에스테반의 머리카락만을 쓸어넘기던 에스더가 불안한 듯 한 번 더 에스테반을 꾹 끌어안았다. 그에 대답하듯 에스테반이 짧게 등을 토닥인다.
" 알 것 같아. 나도 그래서 한 번 NG 냈잖아. "
" 그랬어? "
에스더가 놀란 표정으로 에스테반을 돌아본다. 기억이 났는지 금세 아, 맞아. 하고 납득. 그러다가 갑자기.
" 키스해도 돼? "
다짜고짜 이어지는 질문에 에스테반은 잠깐 말없이 웃는다. 이런 거 일일이 허락 안 맡아도 된다고 했잖아. 긍정의 의미를 두른 대사가 마침표를 찍자마자 서로의 입술이 겹쳐진다. 눈물도 슬픔도 없는 실로 사랑으로만 가득 찬 꽤나 긴 입맞춤. 마치 80번째 씬에서 못다 했던 키스를 이어 하는 기분도 든다.
천천히, 입술을 떼고 대신 마주 닿는 이마. 에스더가 습관처럼 그를 불렀다. 에스테반…
" 응. "
" 너랑 슬픈 거 찍으면 안 될 것 같아. "
" …왜? "
" 연기를 연기로만 끊어야 하는데 네가 상대가 되면 그게 잘 안 돼…. "
한동안 조용하다가 에스테반이 말을 툭 던진다. 나는 너랑 하는 거면 다 좋은데. 말을 들은 에스더가 푸스스 웃는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연인이 사랑스러워서 짧게 콧잔등에 입을 맞춘다.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그래…. 부끄러워서 평소에 못 하던 이야기도 왜 갑자기 이리 잘 나오는지. 역시 술 때문인가? 제 뜬금없는 행동의 원인으로 애꿎은 술을 탓한다. 자자. 에스더도 에스테반의 등을 토닥인다.
16부 81씬.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의 마지막 외전 1씬. 에스더 카터는 눈을 감으며 82번째 씬의 막을 내리기로 한다.
씬/82, N, 에스더 카터의 집, 침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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